
영화 '만다라'는 임권택 감독의 대표작으로, 불교적 세계관을 넘어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철학적 영화입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종교 영화가 아닌, 삶의 의미와 깨달음의 여정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특히 오프닝 장면 하나만으로도 영화 전체의 주제를 압축적으로 전달하는 임권택 감독의 탁월한 영상미학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오프닝 구도에 담긴 철학적 메시지
영화 '만다라'의 오프닝 장면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으로 손꼽힙니다. 제도권 스님들의 모습을 몽타주로 보여준 후, 추수가 끝난 겨울 들판에 버스가 다가오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군인의 검문으로 법운 스님이 버스에서 내린 후, 두 스님이 처음 만나 함께 걸어가는 장면이 이어지는데, 바로 이 장면의 구도가 압도적인 영상미를 보여줍니다.
시네마스코프 비율로 길게 펼쳐진 이 장면은 소실점이 저 멀리 끝없는 길로 이어지며, 화면의 3분의 2가 하늘로 채워져 있습니다. 해가 진 후나 뜨기 전의 어스름한 시간대에 촬영된 이 장면은, 맑지 않은 하늘 아래 진흙 같은 사바세계의 길이 펼쳐집니다. 양쪽의 전봇대들은 소실점을 더욱 강조하며, 두 스님이 가야 할 구도의 길이 얼마나 아득하고 먼지를 시각적으로 표현합니다.
이 한 장면은 단순한 풍경이 아닙니다. 구도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스님들의 여정, 그들이 꿈꾸는 해탈이 얼마나 멀고 험난한지, 그리고 그 해탈이 과연 존재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까지 담고 있습니다. 화면 오른쪽 하늘 위에 보이는 먼 산은 지산 스님이 있는 쪽에 배치되어 있고, 왼쪽은 평평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구도 설정은 영화가 다루고자 하는 소승불교와 대승불교의 대비, 교리 안에서 깨달음을 찾으려는 법운과 그 한계를 넘어 민중 속으로 들어가는 지산의 서로 다른 수행 방식을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이 오프닝 한 장면만으로 전체 서사의 핵심을 압축적으로 전달하며, 관객에게 깊은 사유의 공간을 제공합니다.
임권택 감독의 영상적 사고와 연출 철학
임권택 감독은 영상적 사고가 뛰어난 진정한 영화 작가입니다. 소설가가 상황을 글로 풀어내듯, 감독은 그것을 영상으로 보여주어야 하는데, 임권택 감독은 대사를 최소화하고 몇 개의 영상만으로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표현하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이는 영화와 드라마를 구분 짓는 본질적 차이이기도 합니다.
영화는 1초에 24컷이 확대되어 움직이는 매체로, 사진술의 확장으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대로 된 공간에서 적절한 사운드로 감상했을 때 비로소 영화를 온전히 경험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TV 드라마는 연극이나 대중 소설의 확장으로, 작은 화면에서 인물들의 대화와 빠른 전개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결정적인 한 컷이 머릿속에 남지만, 드라마는 몇몇 대사가 기억에 남는 것이 바로 이러한 매체적 차이 때문입니다.
임권택 감독의 특징 중 하나는 '열린 프레임'의 사용입니다. 그의 영화는 대부분 열려있는 프레임을 선호하며, 이를 통해 속세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담아냅니다. 이러한 열린 프레임은 주제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임권택 영화를 '길의 영화'로 만듭니다. <서편제>, <태백산맥>, <취화선> 같은 작품들이 모두 길 위의 영화였다는 점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만 임권택의 영화는 낭만적인 로드무비라기보다는 지나치게 엄숙하고 무겁고 철학적입니다.
<서편제>가 판소리를 지키는 사람들의 모습을 아름다운 길의 풍경 속에서 역설적으로 보여준다면, <만다라>의 길은 그렇게 아름다운 풍경이 없습니다. 오히려 황량하고 거친 길을 통해 구도의 치열함과 민중과 함께 아파하는 본질적인 깨달음을 더욱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족보>에서 설진영이 창씨개명을 하러 걸어올 때를 잡은 망원 렌즈 역시 탁월한 예입니다. 현학적이지도 화려하지도 않지만 그 안에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 있기에 임권택 영화는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영상미학으로 본 만다라의 리얼리즘과 인본주의
영화 '만다라'는 리얼리즘과 인본주의가 결합된 걸작입니다. 임권택 감독이 추구하는 리얼리즘은 표현주의적 과장이 아닌, 실제 인간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것입니다. 이는 만다라 오프닝 장면의 프레임 구성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인간을 중심에 두고, 그들의 실제 삶과 고뇌를 진솔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임권택 영화의 핵심입니다.
영화 속에서 두 스님이 걸어가는 장면을 다시 살펴보면, 조금 걸어가다 지산 스님은 왼쪽의 속세로 들어갑니다. "출출해서 오랜만에 염불을 외웠더니 소주 한잔해야겠네"라며 '나무아미타불'을 외우며 속세로 향합니다. 반면 법운은 그 길을 계속 걸어갑니다. 불교 교리 안에서 깨달음을 찾으려는 법운과 그것을 깨고 속세로 들어간 지산의 대비가 화면 구도를 통해 완벽하게 표현됩니다.
이 장면은 대칭 구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언밸런스합니다. 이러한 미묘한 불균형은 두 스님의 수행 방식이 대칭되는 것 같으면서도 본질적으로 다른 길임을 암시합니다. 법운은 소승 안에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서 해탈을 찾으려고 사생결단으로 고민하는 반면, 지산은 그 한계를 넘어 민중 속으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부딪히며 결국 타버리는 길을 선택합니다. "지산이지만 내가 어떻게 산을 알아 허허"라는 대사는 이러한 대승불교와 소승불교의 대결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영화 '만다라'는 불교에서 말하는 우주의 질서, 깨달음의 구조, 진리의 지도로서의 만다라 개념을 인간의 끊임없는 수행과 노력의 길로 치환합니다. 교리대로 수행의 길을 가는 스님과 민중 속에서 민중과 함께 경험하고 고통받으면서 수행하는 스님의 비교를 통해 수행의 정답을 찾고자 하지만, 결국 영화는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질문 자체가 종교를 넘어선 인간 삶의 탐구라는 보편적 의미를 갖는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영화 '만다라'는 단순한 불교 영화를 넘어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 인간이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철학적 작품입니다. 임권택 감독의 탁월한 영상미학과 리얼리즘적 접근은 관객에게 깊은 성찰의 시간을 선사하며, 한국 영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작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종교적 성향과 무관하게 모든 이들에게 삶과 깨달음에 대한 영상적 사고의 훌륭한 본보기가 되는 작품입니다.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s://youtu.be/9OOvr075qZs?si=y5RtaTHnNFvWbKx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