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3년 개봉한 영화 <돌아오지 않는 해병>은 <빨간 마후라>와 더불어 60년대 한국 전쟁 영화의 양대 산맥으로 평가받는 작품입니다.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작품성 때문만이 아닙니다. 해병대 사령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현역 해병대원들의 직접 참여, 그리고 상상하기 어려운 제작 방식 때문입니다. 본 글에서는 영화 제작 당시의 놀라운 비화와 그 속에 담긴 해병대 정신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해병대 사령부 의장대의 전면 출연
영화 <돌아오지 않는 해병>의 엑스트라들은 일반적인 영화 제작 방식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당시 후암동에 위치했던 해병대 사령부는 전차, 상륙 장갑차 등 대형 장비는 물론 병력까지 지원했습니다. 특히 해병대 역할을 맡은 엑스트라들은 전원 해병대 사령부 의장대 소속 현역 병사들이었습니다. 병 115기 정도의 기수를 가진 약 100명의 의장대원들이 5개월에 걸쳐 김포 월곶면 고양리에서 촬영에 참여했습니다.
영화를 본 많은 관객들은 "주연 배우들보다 엑스트라들이 더 멋있다", "저 엑스트라들은 도대체 몇 달 동안 훈련을 받았기에 현역 병사들 뺨치는 동작이 나오느냐"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는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엑스트라들이 바로 대한민국 최고 수준의 의장대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훤칠한 키와 완벽한 자세, 민첩한 각개전투 동작은 연기가 아닌 실제 군사 훈련의 결과물이었습니다.
당시 의장대의 전설로 불리던 조정래 상사는 영화에서 유일하게 대사가 있는 현역 해병대원 역할을 맡았습니다. 병 7기 출신으로 6.25 참전 경험이 있던 그는 "조자룡"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62년도까지 해병대 사령부 의장대에서 근무하다가 촬영 당시에는 미 8군 의장대 해병대 책임자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엑스트라로 참여했던 병 115기 이무정 의장대원은 이후 80년대에 영화계에 데뷔하여 <부산 갈매기>, <뽕> 시리즈 등에 출연하며 한국영화배우협회 부회장까지 역임했다는 사실입니다.
실탄 사격과 TNT 폭발 사고의 위험천만한 촬영 현장
<돌아오지 않는 해병>의 제작 과정은 현대 영화 제작 기준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총기류는 전부 실제 무기였고, 놀랍게도 공포탄이 아닌 100% 실탄을 사용했습니다. 사격 장면에서 보이는 반동과 탄피의 움직임이 이를 증명합니다. 해병대는 특등사수들만 별도로 선발하여 돌격해 오는 중공군 역할의 엑스트라들이 맞지 않도록 조준 사격을 했다고 합니다.
반면 중공군 역할의 엑스트라들은 촬영 현장 근처 주민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이들은 해병대원들처럼 훤칠한 키나 멋진 자세가 필요하지 않았지만, 훨씬 더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1963년 3월 15일 조선일보 기사에 따르면, 촬영 중 땅에 묻힌 TNT가 폭발하여 고양리에 거주하는 22세 이모 씨가 허벅다리를 완전히 잃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다른 세 명도 부상을 입었습니다.
영화사 측은 피해자 이모 씨에게 서울 강남의 땅 천 평을 보상으로 제공하여 합의했다고 전해집니다. 당시는 63년도였기에 땅값이 그리 높지 않았지만, 강남 개발 이후까지 땅을 보유했다면 상당한 재산이 되었을 것입니다. 실탄 사격과 실제 폭발물 사용은 "실제 사람을 향해 실탄을 발사하는, 미국의 대형 영화 제작사에서도 할 수 없었던 대한민국 해병대만의 영화 촬영 기법"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였습니다.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엑스트라 일당을 10배로 올려줘도 참여하겠다는 사람을 찾기 어려울 위험천만한 촬영 방식이었습니다.
60년대 해병대 정신과 국민 인식 제고의 성과
영화 <돌아오지 않는 해병>이 단순한 오락물을 넘어서는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해병대 전체가 하나 되어 조직의 명예를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입니다. 해병대 사령부 지휘부의 전폭적인 지원부터 말단 이등병의 헌신적인 노력까지, 모든 구성원이 해병대의 이미지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영화 개봉 이후 해병대에 대한 일반 국민의 인식이 엄청나게 좋아졌다는 증언은 이러한 노력의 성과를 보여줍니다.
영화는 6.25 전쟁 중 사천강 전투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일부 고증 오류도 존재합니다. 조정래 상사가 미 육군 군복을 입었던 것이나, 등장하는 군용 트럭에 "해병대 여단"이라고 적혀 있어 63년 당시 김포 여단 차량임을 나타내는 점 등은 실제 사천강 전투 당시의 해병대 제1전투단 고증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세부적인 오류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해병대원들의 용맹함, 인간적인 모습, 전우애, 갈등과 화해 등을 사실적으로 표현했습니다.
60년 전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근래 제작된 영화에 비해 손색이 없는 완성도를 보여주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진정성 때문입니다. 현역 의장대원들의 완벽한 군사 동작, 실제 장비와 실탄 사용으로 인한 박진감 넘치는 전투 장면, 그리고 무엇보다 해병대의 정신을 제대로 담아내려는 제작진과 참여자들의 열정이 만들어낸 결과물입니다. 아역 배우 전영선이 연기한 영희 역할은 해병대원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장치로 활용되었습니다.
결론
1963년 개봉 이후 이 영화는 <빨간 마후라>(1964년, 공군 지원)의 제작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한국 전쟁 영화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용기 있는 해병대 병사들의 대규모 전투 재현과 사실적 묘사는 당시 많은 관람객의 관심을 이끌어냈습니다. 명성 있는 배우보다 엑스트라들의 활약이 더욱 돋보였고, 그들 대부분이 현역이었다는 점은 영화에 현실감을 더했습니다. 현대 해병대가 이러한 선배들의 정신과 노력의 100분의 1만큼이라도 따라가고 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조직 전체가 하나 되어 해병대의 참모습을 알리는 것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될 중요한 과제입니다.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돌아오지 않는 해병 제작 비화 / 군썰이 주석 https://youtu.be/2xmynEiTJzA?si=wiSML3auFppHzrQ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