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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때 그 사람들' 분석 (블랙코미디, 풍자기법, 10.26사건)

by kst103907 2026. 2. 8.

영화 '그때 그 사람들'

임상수 감독의 2005년 작품 <그때 그 사람들>은 10.26 사건을 블랙코미디로 재해석한 파격적인 영화입니다. 이 작품은 역사적 사실의 충실한 재현보다는, 권력의 민낯을 풍자와 조롱으로 드러내는 데 집중합니다. 최근 화제를 모은 <남산의 부장들>과 같은 소재를 다루지만, 접근 방식과 메시지 전달 방식에서 확연히 다른 특징을 보여줍니다.

시대를 앞서간 블랙코미디의 완성

<그때 그 사람들>은 2005년 개봉 당시 대중들로부터 외면받았지만, 오늘날 재평가받아야 할 작품입니다. 이 영화가 블랙코미디로서 탁월한 이유는 역사적 비극을 다루면서도 엄숙주의를 거부하고, 오히려 웃음을 통해 더 날카로운 비판을 수행하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파격적인 오프닝으로 시작합니다. 비키니를 입은 여성들이 등장하고 가슴이 노출되는 장면으로 영화가 열립니다. 이는 단순한 선정성이 아니라, 박정희 대통령과 10.26 사건을 둘러싼 신화적 포장을 벗겨내겠다는 감독의 의지를 상징합니다. 윤여정 배우가 연기한 캐릭터는 첫 대사부터 박정희를 여색에 빠진 인물로 묘사하며, 권력자의 민낯을 거침없이 드러냅니다.
<남산의 부장들>이 김재규의 내면 심리와 갈등에 집중했다면, <그때 그 사람들>은 10.26 당일 하루 동안 벌어진 일들만을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는 역사적 사실보다 메시지 전달을 우선시하는 선택입니다. 실제로 이 영화는 역사 고증에 충실하기보다는, 권력의 허상과 인간의 나약함을 폭로하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중앙정보부 요원들은 영화 속에서 대부분 허당으로 그려지며, 이들의 혼란과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관객에게 웃음을 유발하면서도 동시에 권력의 엄숙함을 해체시킵니다. 이러한 희화화 기법은 고전적인 풍자 전통을 계승하는 것으로, 권력을 웃음거리로 만듦으로써 그 권위를 무너뜨리는 효과를 발휘합니다.

냉소적 풍자기법과 일본어 대사의 의미

<그때 그 사람들>의 풍자기법은 여러 층위에서 작동합니다. 먼저 박정희를 여색가로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남산의 부장들>이 박정희의 돈에 대한 집착과 이중성을 부각했다면, 이 영화는 주색에 빠진 말년의 모습을 강조합니다. 이는 상호 보완적인 비판이면서도, 어떤 방식의 비판이 더 효과적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영화에서 김윤아가 부른 일본 노래 '비탄의 야도카리'는 절묘한 장치입니다. 실제로 심수봉이 불렀던 '그때 그 사람' 대신 아예 엔카를 삽입한 것은, 박정희 정권의 친일적 성격을 암시하는 동시에 다가올 비극을 예고하는 이중적 기능을 합니다. 처연한 분위기의 노래는 장면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면서도, 일본어 가사를 통해 정권에 대한 비판을 수행합니다.
일본어 대사의 빈번한 사용은 이 영화의 또 다른 특징입니다. <남산의 부장들>에서는 단 한 번 일본어가 등장하지만, <그때 그 사람들>에서는 중요한 대사들이 일본어로 처리됩니다. 박정희가 "사나이가 시시하게 배꼽 아래 이런 문제 삼는 게 아니야"라고 일본어로 말하는 장면은, 이토 히로부미의 발언에서 영감을 받은 듯한 설정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언어 선택은 단순한 리얼리티 재현을 넘어, 정권의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제기합니다.
백윤식이 연기한 김재규는 <남산의 부장들>의 이병헌 버전과 확연히 다릅니다. 이병헌의 김재규가 극도로 긴장한 모습이었다면, 백윤식의 김재규는 특유의 무심한 대사 처리로 오히려 더 섬뜩한 느낌을 줍니다. "너만 죽으면 되는데" 하고 차지철을 쏘는 장면, 박정희에게 "나다" 하고 총을 쏘는 장면은 담담하면서도 냉소적입니다.

10.26 사건의 재해석과 관찰자적 시점

<그때 그 사람들>이 10.26 사건을 다루는 방식은 독특합니다. <남산의 부장들>이 김재규의 주관적 시점에서 사건을 조망했다면, 이 영화는 철저히 관찰자적 입장을 유지합니다. 한석규가 연기한 박선호의 시점에서 사건을 바라보게 함으로써, 관객은 한 발짝 떨어진 거리에서 권력의 몰락을 목격하게 됩니다.
총격 장면의 연출 차이도 두드러집니다. <남산의 부장들>은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게 "이 새끼 정방적이야" 같은 실제 대사를 사용하지만, <그때 그 사람들>은 더 과장된 연출을 택합니다. 차지철이 "캄보디아에서는 300만 명 죽였다는데 우리는 만 명만 죽이면 됩니다"라고 말하는 장면, 그리고 총에 맞고도 화장실에서 나와 경호원에게 뭐라 하다가 여자들에게 "조용히 좀 해요" 소리를 듣고 목소리를 낮추는 장면은 블랙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특히 부감 샷의 사용은 이 영화의 미학적 특징입니다. <남산의 부장들>이 클로즈업을 통해 인물의 감정을 강조했다면, <그때 그 사람들>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위성 샷을 활용해 관찰자적 거리를 유지합니다. 총을 가져오라고 우왕좌왕 뛰어나오는 요원들을 부감으로 촬영한 장면은 웃음을 유발하면서도, 권력의 초라함을 극대화합니다.
육본으로 이동하는 장면에서도 이 영화의 풍자는 계속됩니다. 육군 참모총장이 "아, 내 차를 가져오는 건데"라고 말하는 명대사, 홍록기가 육군 참모총장을 알아보지 못해 "무슨 어느 대학 총장이라는데?"라고 묻는 장면은 권력 구조의 혼란을 희화화합니다. 백윤식이 육본을 점령했다고 여유를 부리다가 결국 사로잡히는 과정은, 권력의 덧없음을 보여주는 비극적 아이러니입니다.
결말에서 한석규가 차를 타고 어디로 갈지 몰라 방향을 잃은 채 헤매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입니다. 이는 단순히 박선호 개인의 혼란이 아니라, 10.26 이후 한국 사회 전체가 겪었던 방향 상실을 상징합니다. 길이 정해져 있지 않고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의 인간 존재를 포착한 이 장면은, 역사적 사건이 개인에게 어떤 의미로 각인되는지를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그때 그 사람들>은 역사의 거대한 이념이나 교훈보다는, 한 개인의 인간성과 욕망에서 중요한 사건이 발생한다는 진실을 코미디 화하여 표현한 작품입니다.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권력도 결국 불완전한 인간들이 만들어낸 허상이며, 그 민낯은 우스꽝스러울 만큼 초라하다는 것입니다. 2005년 참여정부 시절에도 상영 금지 가처분이 신청될 만큼 파격적이었던 이 영화는, 오늘날 다시 보아도 여전히 날카롭고 용감한 작품으로 남아 있습니다.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s://youtu.be/X0QASkV8HWk?si=sIXL3rYqaTxxUq_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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