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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사탕' 영화 리뷰 (역순 서사, 5.18 광주, 한국현대사)

by kst103907 2026. 2. 2.

영화 '박하사탕'

2000년 1월 1일 개봉한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박하사탕'은 한국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작입니다. 이 작품은 순수했던 청년 김영호가 20년의 세월 동안 어떻게 타락하고 몰락해 가는지를 역순으로 보여주며,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개인의 비극으로 녹여냅니다. "나 다시 돌아갈래!"라는 절규는 단순한 개인의 외침을 넘어 시대를 살아간 모든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합니다.

역순 서사 구조가 만든 충격적 서술

영화 '박하사탕'의 가장 큰 특징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역순 서사 구조입니다. 1999년 봄 야유회 현장에서 철로 위에 올라선 김영호의 절규로 시작해, 사흘 전 권총 자살 실패, 5년 전 가구점 사장 시절, 7년 전 형사 시절, 1984년 가을 신입 형사 시절, 그리고 1980년 5월 광주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러한 서사 구조는 관객에게 독특한 경험을 선사합니다. 야유회 현장에서 "노래 하나 할게"라며 절규하듯 노래를 부르던 영호의 모습은 처음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그가 왜 그렇게 변했는지를 목격하게 되면서, 관객은 점점 더 깊은 슬픔과 분노를 느끼게 됩니다. 영호가 김 사장을 향해 총을 겨눈 이유, 전처 홍자의 집 앞에서 문전박대당한 배경, 수님의 남편이 찾아온 의미가 모두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하나씩 밝혀집니다.

감독은 절제된 시선으로 인물과 시대를 바라봅니다. 감정을 과도하게 나타내는 대신, 관객 스스로 인식하고 아파하게 만드는 연출 방식을 택했습니다. 혼수상태에 빠진 수님에게 박하사탕을 건네며 "이거 기억나요? 박하사탕. 나 옛날에 군대 있을 때 수님 씨가 이거 보내줬죠"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우리는 아직 보지 못한 과거의 순수함을 직감하게 됩니다. 카메라를 고작 4만 원에 팔고 필름을 빛에 노출시켜 망가뜨리며 오열하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역순 구조는 단순한 기법이 아니라, 한 인간의 몰락이 어떻게 시대의 폭력과 맞물려 있는지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장치입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과 개인의 비극

영화의 핵심은 1980년 5월 광주에서 벌어진 사건입니다. 신병이었던 영호는 수님이 면회를 오지만 계엄령 때문에 만나지 못합니다. 수님이 보낸 박하사탕들은 군홧발에 짓밟히고, 영호의 부대는 급박하게 광주로 이동하게 됩니다. 이 장면에서 박하사탕이라는 달콤한 이미지는 처음으로 폭력과 만나게 됩니다.

광주에 투입된 영호는 발에 총을 맞고 부대에서 뒤처집니다. 어둠 속에서 마주친 여고생을 집에 보내려 하지만, 실수로 총이 발사되면서 무고한 여학생을 죽이게 됩니다. 이 순간은 영호의 순수함이 완전히 파괴되는 결정적 장면입니다. 그는 가해자가 되지만, 동시에 군사독재 시절 폭력의 피해자이기도 합니다. 자본주의의 거친 파도 속에서 살아온 한 사람의 삶의 흔적을 다룬 이 작품은, 주인공을 단순히 악인으로 규정하지 않습니다.

5.18 민주화운동이라는 역사적 사건은 영화에서 개인의 비극으로 치환됩니다. 권위주의 사회의 폭력성은 영호라는 평범한 청년을 괴물로 만들었고, 그 트라우마는 이후 20년간 그의 삶을 지배합니다. 1984년 가을 신입 형사 시절, 영호는 고문하는 선배들의 모습에 적응하지 못하는 내성적인 청년이었습니다. 하지만 선배의 강요로 고문에 참여하게 되면서 영호 내면의 폭력성이 드러나고 그의 손은 더럽혀집니다. 수님이 "뭉툭하고 못생겼는데 참 착하게 보이는 손"이라고 했던 그 손은 이제 타인을 고문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영호는 수님이 보는 앞에서 홍자를 성추행하는 등 타락한 모습을 보여주며 그녀를 거부합니다. 그가 선물 받은 카메라를 밀어낸 것은 순수했던 자신을 완전히 포기한 순간이었습니다.

한국현대사의 상처와 개인의 몰락

영화는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배경으로 펼쳐집니다. 1987년 봄, 베테랑 형사가 된 영호는 임신 중인 아내 홍자에게 무관심한 태도를 보입니다. 목욕탕에서 우연히 수배 중인 운동권 학생을 잡아와 고문과 폭행을 가하며 묻습니다. "너 정말 삶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니? 네가 일기에 그렇게 썼대. 너 정말 그렇게 생각해?" 이 질문은 아이러니하게도 영호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1994년 여름, 35살의 영호는 가구점을 운영하는 사장이 되었지만 행복하지 않습니다. 아내 홍자가 바람을 피우는 것을 심부름센터를 통해 감시하고, 모텔로 들이닥쳐 폭행을 가합니다. 하지만 영호 본인 역시 가구점 직원과 바람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식당에서 과거 자신이 고문했던 사람과 마주친 영호는 화장실에서 뜬금없이 "삶은 아름답다... 그렇죠?"라고 묻습니다. 이 장면은 영호가 여전히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줍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씁쓸한 잔상으로 남는 이 영화는 자본주의 사회로의 전환 과정에서 개인이 겪는 몰락도 함께 다룹니다. 사흘 전 시점에서 영호는 수님의 남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다 마지막 돈 탈탈 털어 가지고 이거 하나 구했어. 딱 한 놈만 죽이려고... 내 인생 요렇게 망쳐 놓은 놈들 중에서 딱 한 놈. 어떤 놈을 죽일까 고민되더라고. 피 같은 내 돈 다 날려버린 증권회사 직원? 사채업자? 사기 친 친구 새끼?" 그의 몰락은 개인적 선택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국 현대사가 만들어낸 구조적 산물이기도 합니다.


영화 '박하사탕'은 순수했던 첫사랑과 박하사탕이라는 달콤한 맛의 이미지로 시작하지만, 결국 시대의 폭력이 개인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설경구의 압도적인 연기와 이창동 감독의 연출은 대한민국 최고의 명작을 탄생시켰습니다. 이 영화는 한 개인의 비극을 통해 우리 모두가 살아온 시대를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과 같은 작품입니다.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s://youtu.be/laTOBTXGAxE?si=wMB2YQ_WPdJ0ig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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